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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약어표] [목차] 성경 약어표 성경목록 성경차례 한영성경약어표 

"창세기 창, Genesis, GEN 출애굽기 출, Exodus, EXO 레위기 레, Leviticus, LEV 민수기 민, Numbers, NUM 신명기 신, Deuteronomy, DEU 여호수아 수, Joshua, JOS 사사기 삿, Judges, JDG 룻기 룻, Ruth, RTH 사무엘상 삼상, 1Samuel, SA1 사무엘하 삼하, 2Samuel, SA2 열왕기상 왕상, 1Kings, KI1 열왕기하 왕하, 2Kings, KI2 역대상 대상, 1Chronicles, CH1 역대하 대하, 2Chronicles, CH2 에스라 스, Ezra, EZR 느헤미야 느, Nehemiah, NEH 에스더 에, Esther, EST 욥기 욥, Job, JOB 시편 시, Psalms, PSA 잠언 잠, Proverbs, PRO 전도서 전, Ecclesiastes, ECC 아가 아, SongofSongs, SON 이사야 사, Isaiah, ISA 예레미야 렘, Jeremiah, JER 예레미야 애가 애, Lamentations, LAM 에스겔 겔, Ezekiel, EZE 다니엘 단, Daniel, DAN 호세아 호, Hosea, HOS 요엘 욜, Joel, JOE 아모스 암, Amos, AMO 오바댜 옵, Obadiah, OBA 요나 욘, Jonah, JON 미가 미, Micah, MIC 나훔 나, Nahum, NAH 하박국 합, Habakkuk, HAB 스바냐 습, Zephaniah, ZEP 학개 학, Haggai, HAG 스가랴 슥, Zechariah, ZEC 말라기 말, Malachi, MAL -신약- 마태복음 마, Matthew, MAT 마가복음 막, Mark, MAR 누가복음 눅, Luke, LUK 요한복음 요, John, JOH 사도행전 행, Acts, ACT 로마서 롬, Romans, ROM 고린도전서 고전, 1Corinthians, CO1 고린도후서 고후, 2Corinthians, CO2 갈라디아서 갈, Galatians, GAL 에베소서 엡, Ephesians, EPH 빌립보서 빌, Philippians, PHI 골로새서 골, Colossians, COL 데살로니가전서 살전, 1Thessalonians, TH1 데살로니가후서 살후, 2Thessalonians, TH2 디모데전서 딤전, 1Timothy, TI1 디모데후서 딤후, 2Timothy, TI2 디도서 딛, Titus, TIT 빌레몬서 몬, Philemon, PHM 히브리서 히, Hebrews, HEB 야고보서 약, James, JAM 베드로전서 벧전, 1Peter, PE1 베드로후서 벧후, 2Peter, PE2 요한1서 요일, 1John, JO1 요한2서 요이, 2John, JO2 요한3서 요삼, 3John, JO3 유다서 유, Jude, JUD 요한계시록 계, Revelation, REV "

[최신 구약 개론] 나훔 

"위로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의 선지자 나훔은 주전 7세기에 앗시리아를 향해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역사적인 정황이 너무나 뚜렷한 나머지 전체 기독교 역사에서는 오히려 주목받지 못한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심미적인 가치와 역사적 신학적 맥락 속에서의 중요성을 간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역사적 배경 저작권 표제는 저자의 이름을 나훔이라고 한다. 그는 엘고스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우리에게 알려진 바가 없다. 사실 엘고스라는 곳도 정확히 알수가 없는 현실인데, 몇가지 제안들이 있었다. 중세의 전통은 나훔을 포로로 잡혀간 북왕국의 후손이라고 간주하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엘 카우제라는 갈릴리의 한 장소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북왕국의 한 장소인 가버나움도 강력하게 주장된다. 가버나움이라는 도시의 어원은 ""나훔의 도시""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고스에 대한 논의들은 본문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며, 논의 자체도 중요한 것이 못된다. 시대 나훔서는 철저하게 역사적인 상황에 뿌리를 박고 있다. 주전 7세기로 확정할 수 있는데, 그 연대는 주전 664년 이집트의 테베의 멸망(3:8)과 선지서의 중심 사건은 612년 니느웨의 멸망 사이의 어느 시점일 것이다. 아마도 나훔서는 앗시리아 제국이 상당히 약화되기 이전에 이 책이 쓰여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훔1:12절은 앗시리아가 강장하고 중다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따라서 가장 가능성 있는 연대는 주전 652년의 앗시리아 내전에서부터 626년 바벨론이 앗시리아의 지배력을 크게 흔들기 시작한 시점 사이의 어느 때일 것이다. 이 선지서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초점은 역시 앗시리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앗시리아는 8세기에서 7세기 초엽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652년경에 에살핫돈의 두 아들이 바벨로니아와 니느웨에서 내전을 일으켰을 때부터 아마도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앗술바니팔 왕은 내전을 종식시키고, 또한 이집트까지 정복하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그의 사망과 함께 앗시리아는 급작스런 멸망으로 치닷게 된다. 앗시리아의 멸망에는 바벨론과 메데의 합동 작전이 주요했는데, 메데의 노력으로 니느웨가 무너졌으나, 실상은 바벨론이 그 성을 차지하고 말았다. 문학적인 분석 문체 나훔서는 매우 거친 심판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 표현은 매우 시적이다. 비유적인 표현이나 짜임새있는 평행법들은 나훔 자신이 탁월한 시인임을 보여주고 있다. 장르 원래 선지서는 세가지 용어로 표제를 시작한다. 책, 이상, 신탁이라는 말이 그것인데, 나훔서에는 책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설교자였으며, 그들의 선지서들은 그들이 말한 바들을 나중에 모든 것들이다. 그러나 나훔은 책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책의 여러 가지 기교들은 오히려 듣는 것보다 보는 것에 호소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한편으로 나훔서는 이상을 포함하고 있다. 특별히 2:3-10; 3:2-3에서 그러한 성격이 분명히 나타난다. 그러나 나훔서에서 가장 중요한 장르는 신탁이라고 할 수 있다. 구조 이 책은 매우 짜임새있게 구성되어 있다. 선지자의 이름, 도시의 이름, 그의 주제에 대해서 말해주는 상당히 전형적인 표제로 시작해서, 장엄한 승리의 찬양시와 승리의 노래, 그리고 신탁과 앗수르에 대한 조롱들, 마지막으로 짧은 장송곡으로 결론을 맺는다. 신학적인 메시지 나훔서 1:7-8절은 나훔서의 중심적인 메시지를 요약해 준다. 나훔서에서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 전쟁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용사이시다. 주전 7세기 독자들에게 나훔서는 희망의 메시지였으며 위로의 메시지였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으며, 곧 그 약속을 성취하셨다. 신약으로의 접근 나훔서와 현대 교회와의 관련성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훔서의 영속적인 의미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원수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잇는 위대한 찬송인 1:2-8에서 가장 잘 찾아볼 수 있다. 용사로서의 하나님의 개념은 신약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를 고대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역시 용사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용사됨은 사단 및 그의 마귀 및 인간 군대에 대해서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마지막 전쟁을 수행하시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그러므로 비록 니느웨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나훔서의 영속적인 중요성은 그리스도의 전투에서도 역시 찾아 볼 수 있다."

[최신 구약 개론] 다니엘 

"다니엘서는 성경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어렵고 복잡한 책이다. 처음 여섯 장의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고, 인기있는 반면 나머지 여섯장들은 끊임없는 논쟁과 해석학적인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 저자 및 연대 전통적인 견해는 주전 6세기에 활약했던 정치가이자 선지자인 다니엘에 의해 쓰져졌다는 것이다. 7장 이하에 나타나는 일인칭은 최소한 다니엘에게서 그 출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근거를 제공하지만, 또한 이상들에 자주 나타나는 삼인칭은 이 기사들이 다니엘이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편집되었을 가능성도 열어두게 한다. 신약에서도 다니엘서를 많이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니엘을 저자로 언급하고 있는 부분은 마24:15-16뿐이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학자들은 다니엘서가 사실은 주전 2세기에 저술된 책이며, 사후 예언을 활용한 가명의 책이라고 믿고 있다. 주전 2세기와 관련해서 학자들은 다니엘서의 최종 편집 시기가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의 시기라고 못박고 있다. 사후 예언과 관련해서 보수주의자인 볼드윈은 ""당겨서 보기(telescoping)"" 현상이라고 말한다. 즉 선지자들은 나중에 성취되어질 때에는 각각 다른 시기에 일어나게 될 사건들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비평학의 사후 예언은 인간이 몇 세기 후의 일을 정확하게 예견할 능력이 없다는 것과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성 다니엘서는 정확한 연대를 지적함으로 저자가 독자들에게 역사적인 정보를 주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니엘서는 스스로 주전 6세기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저작 시기도 그 때를 전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저자는 6세기의 이야기와 함께 선지자적인 시각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것을 완전히 증명하거나 완전히 반박할만한 결정적인 자료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페르시아 시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한 점을 고려해서 비판적인 판단을 삼갈 필요가 있다. 다니엘서에는 많은 역사적인 난점들이 있다. 물론 벨사살과 관련된 문제들은 대부분 해결이 되었지만, 다니엘1:1절의 연대기적인 언급이나, 특별히 메데사람 다리오에 대한 문제는 훨씬 더 큰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메데 사람 다리오는 다니엘서를 제외하고는 역사적인 문헌에서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다리오에 대한 어려움은 다니엘서를 바라보는데 역사적인 회의주의에 빠지게 하였고, 이에 대해 조화하려는 많은 노력들이 있어왔다. 휫트콤: 그는 메데 사람 다리오가 사실은 아카드의 문헌들에서 바벨론의 통치자로 알려져 있는 구바루(Gubaru)라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이것은 바벨론의 총독을 왜 왕으로 부르고 있는 지 등에 대한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와이즈맨: 그는 메데사람 다리오가 고레스와 동일인물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역사적인 자료들은 한 왕이 두 나라를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지고 통치하는 관행을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셰아: 그는 가장 매력적인 이론을 내어 놓았다. 셰아는 바벨론 정복 이후 약 14개월 동안 바벨론 왕이라는 칭호를 가진 속주를 통해서 통치를 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장본인은 구바루라고 결론내렸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메데 사람 다리오의 문제는 성경 역사상의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들 중의 하나이다. 조화주의적인 이론들이 제시되었지만, 휫트콤의 이론은 타당성이 없다고 보아야 하며, 와이즈맨의 이론은 가능성은 있지만, 그것을 지지해줄 증거가 부족한 실정이다. 그리고 셰아의 이론도 역시 난점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더 많은 증거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할 뿐이다. 넓은 배경 보다 넓게 볼 때 이 책은 대략 주전 605년부터 530년대 중엽까지로 잡을 수 있다. 느부갓네살이 다니엘과 세 친구를 잡아간 것에서부터, 고레스 제 3년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마 다니엘서는 고레스 제 3년 즈음에 마감을 한 것같다. 그러나 그의 이상은 가깝고 먼 미래에 다 걸쳐 있기 때문에 최소한 주전 2세기까지의 고대 근동의 역사를 검토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포로 시대와 바벨론 정복자들의 압제 속에서 탄생된 다니엘서는 셀쥬크스 왕조의 압제와 박해 기간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특히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니엘서의 미래에 대한 이상은 안티오쿠스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셀쥬커스 왕조를 넘어서서 로마인들에게까지 이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모든 억압적인 인간 나라들을 멸절시키는 날, 즉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의 나라들의 권세를 얻는 날까지 이른다. 이날은 아직 미래의 것임이 분명하다. 문학적인 분석 장르 다니엘서는 궁정 네러티브와 묵시적 예언이라는 두 가지 뚜렷한 장르를 가지고 있다. 궁정네러티브. 처음 여섯장의 내용인데, 이 장들의 장르를 정의하기 위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왔다. 혹은 동화, 전설, 궁정 이야기, 미담, 미드라쉬 등으로 언급되었는데, 이 모든 이야기들은 전반부의 역사적인 성격들을 결여하고 있다. 궁정의 이야기들은 주로 주인공들과 이방 궁정의 사람들 간에 일어나는 일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공통적으로 교훈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음이 확실하다. 타우너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자들은 변호를 받을 것이고 바벨론에서조차 위대하게 될 것이다""라고 요약했다. 묵시적 예언. 비록 짧기는 하지만 다니엘서의 전체적인 성격을 규정하고 있으며, 아무런 논란 없이 묵시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전통적인 접근 방법은 본문 내에서 그 본문을 묵시로 규정짓도록 만드는 특징들을 추출해 내는 것이었다. 협의의 종말론 - 묵시 문학은 가까운 미래를 넘어서서 말세를 바라본다. 중개된 계시 -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 백성에게 가져다 주는 존재이다. 그러나 묵시 문학에는 새로운 요소가 작용한다. 하나님은 중개자를 통해서 다니엘에게 말씀을 하신다. 또한 때로는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통해서 계시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보기 드문 상징들 - 묵시 문학의 상징들은 거의가 경이로운 것들이다. 다니엘서의 잡종 짐승들이 그것이다. 배경:억압 - 묵시 문학은 억압받는 사회나 어떤 사회 내에서의 억압받는 계층의 산물이다. 억압은 우리가 묵시 문학 속에서 만나게 되는 악에 대한 기괴한 묘사들 및 구원을 향한 고통스런 부르짖음을 상당히 잘 설명해 준다. 묵시 문학에서 가장 흔하게 반복되는 주제들 중의 하나는 용사로서의 하나님이란 주제이다. 묵시문학의 선지자들은 억압한느 자들을 심판하시고 억압ㅂ다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강하게 개입하실 것을 고대한다. 역사에 대한 결정론적 시각과 주도적인 낙관주의 -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반면, 다니엘은 심판이 확정적임을 선포한다. 가명성과 사후예언 - 함축된 의미들과 기원들 - 중개된 천사로부터 기괴하고 끔찍한 상징들을 통해 받은 말세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이상들의 목적은 회개가 아니라 고통의 때에 있는 신실한 자들을 격려하기 위함이다. 언어 다니엘서는 두가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단1:1-2:4과 8:1-12:13은 히브리어로, 2:4b-7:28은 아람어로 쓰여있다. 또한 아람어는 다니엘서의 히브리어 원문을 번역한 것이라는 흔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이 원래의 본문이라고 믿을 수 있다. 이런 언어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최종적인 본문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많은 차이를 만들지는 않는다. 흥미롭게도 언어가 여러 가지 장르들과 겹쳐 있음으로 해서 우리로 하여금 이 책이 원래적인 통일성은 아니라 할지라도 최종적인 통일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게 만들어 준다. 문체 문체에 대해서 현대 학자들은 좋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나타나는 인물 성격 묘사는 이상적인 의인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런 이상화는 왜곡이나 위조가 아니라 선별의 한 기능일 뿐이다. 본문이 다니엘의 흠이나 죄악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역사상의 다니엘이 이러한 것들로부터 결백했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이 책은 고통의 순간에 있는 백성들에게 다니엘은 모범적인 행실의 표본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서의 통일성 다니엘서는 다양한 장르와 언어를 가지고 있기에 이 책의 원래적인 통일성은 많은 논란이 되어 왔다. 그러나 현대 성경 학자들은 본문의 기원과는 상관없이 그 최종적인 본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록 다니엘서도 원래는 복합적인 본문이지만 현재는 통일성을 가지고 있으며, 정경적인 모습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식이다. 또한 단일 저자에 의한 저작이라고 할 지라도 저자가 한 시기에 다 썼음을 확정지을 수도 없다. 다니엘은 자신의 생애에 걸쳐서 이 책을 부분부분 썼다. 그가 이 책을 쓸 때 소요된 장시간이란 기간은 이 책 안의 다양성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성은 이 책이 한 시기, 즉 그의 생애 마지막 시기에 쓰여졌을 경우에도 야기될 수 있음을 겸손히 인정해야 한다. 신학적인 목적 이 책의 매장을 관통해서 흐르는 명료한 메시지가 하나 있다.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고 통치하시며 결국 모든 인간적인 악들을 이기실 것이다. 이 주제는 이 책의 두 부분 모두에서 발견된다. 전반부는 압제의 시대에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를 하나님의 백성에게 말해주고 있는 지침서이다. 인물들은 이상적인 원리들을 실천해 보이고 있다. 후반부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의 역사적인 사실이라기 보다는 미래의 소망에 있다. 하나님은 높임받으실 만하고, 지혜로우시고, 능하신 심판관과 같은 모습으로 묘사되며, 인간적인 모습으로의 묘사는 인간의 악의 영역에 대해서 묘사할 때 사용된 짐승적인 이미지들과 대조되며, 또한 그 점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의 나라와 인간의 나라는 날카롭게 대조되고 있다. 이로써 다니엘서의 메시지는 성경 전체의 메시지와 조화를 이룬다. 하나님은 악과 전쟁을 치르고 계시며, 틀림없이 악에 승리를 거두실 것이다. 이 메시지는 다니엘 시절의 이스라엘 중의 신실한 자들에게 위로를 주었으며, 또한 오늘날까지도 마찬가지이다. 신약으로의 접근 악에 대한 영원한 승리는 신약시대에 완성된다. 그러나 이 승리는 예견적인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완성될 것이다. 이 미래의 승리를 다루고 있는 계시록이 다니엘서를 자주 인용함으로 양자간의 밀접한 관련성을 보여준다. 계시록은 다니엘서에서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 세상의 악을 제거하시고 자기 백성을 압제자로부터 구원하실 때를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

[최신 구약 개론] 레위기 

"오경의 세 번째 책이다. 히브리어 제목은 ""바이크라""로서 ""그리고 그가 부르셨다""라는 의미이다. 레위기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무관심의 대상중의 하나이다. 혹은 그 간격을 메우기 위해서 알레고리적인 해석을 선호해왔다. 그러나 그 내용을 연구하면 알레고리에 의존하지 않고도 이 책이 하나님 및 구속사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를 돕는데 많은 공헌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배경 비평주의에 의해서 P의 작품으로 간주된다. 아마도 주된 내용이 제의 및 율법 등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P문서는 신명기 이후의 문서이며, 따라서 요시야 시대 이후의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레위기 자체는 모세가 저자라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서두에서부터 여호와께서 모세를 부르셨고, 전환점에서도 역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라는 문구가 사용된다(4:1;5:14; 6:1,8,19,24; 11:1; 12:1; 13:1; 14:1; 15:1; 16:1; 19:1; 20:1; 21:1; 24:1; 27:1 등). 레위기가 포로기 이전 시대의 말엽이거나 포로기 이후 시대의 내용이라는 것에 대한 뚜렷한 증거는 없다. 문학적인 분석 율법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역시 이 책도 네러티브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적기는 하지만, 레위기에는 비율법적인 네러티브들이 존재한다. 이런 점들이 레위기가 오경의 전체적인 장르 즉 교훈적인 역사라는 핵심적인 장르를 계속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구조 1. 제사법 (1:1-7:38) 2. 제사장 네러티브 (8:1-10:20) 3. 제의적인 정결을 보호하기 위한 율법들 (11:1-16:34) 4. 성결법전 (17-본 서는 다듬어진 문학적 기교보다는 정보제공에 중점을 둔다. 신학적인 메시지27) 문체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분명하고 단순한 구조이다. 제의와 율법이 주가 되어 있기 때문에 문체는 직설적인 본문의 형태이다. 따라서 구약적인 맥락 하나님의 거룩하심. 구약의 예배와 율법, 그리고 제의에 대한 구체적인 조항으로 들어가서 길을 잃기 전에 우리는 이 모든 율법들과 정결 및 청결이라는 중요한 개념이 배후에 있는 이 책의 핵심적인 가르침, 즉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는 가르침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레위기서는 하나님이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계시며, 오직 죄의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들만이 그의 앞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제사제도. 제사에 대한 긴서술은 단순히 제사제도를 서술하는데 목적이 있다. 제사제도의 의미는 제사장이건 보통 사람이건 간에 원래의 청중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었던 것이 분명하며, 단지 필요한 것은 바른 절차를 밝히는 것이었던 것 같다. 개별적인 제사들을 검토할 때 우리는 이러한 제사 제도를 언약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언약관계는 세 가지 방향에서 제사 제도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첫째는 제사 제도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언약 당사자들 간의 친교를 포함하고 있으며, 셋째는 제사 제도가 언약 관계의 벌어진 틈을 메꾸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속죄). 이로써 제사 제도는 하나님의 거룩성이라는 전반적인 신학에 매우 잘 부합되게 된다. 제사제도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 부정한 인생이 다시 정결하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는길을 제시한다. 번제(Burnt Offering). 원래의 히브리어는 ""올람""으로서 올라가다는 의미이다. 예배자는 온전한 제물을 가지고 와야 했다. 번제는 종종 속죄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로서의 의미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소제(Grain Offering). 이 제사는 헌물적인 기능을 강조하고 있으며, 언약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 드려진 선물이다. 친목제(Fellowship Offering). 화목제로 통상 번역되었다. 예배자와 하나님, 그리고 예배자들 사이의 교제를 위한 것이다. 이 제사의 선물적인 기능만을 강조해서는 안된다. 이 제사도 역시 속죄 행위의 한 방편이었다. 정결제(Purifiaction Offering). 속죄제로 알려진 정결제는 죄를 제거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른 제사와의 구별점은 이 제사가 부지중에 지은 사람들에게 효과를 가진다는 것이다. 속건제(Guilt Offering). 속건제를 드려야 하는 경우는 하나님의 성물들과 관련해서 지은 죄일 경우에 그러했다. 죄를 보상하기 위해서는 주로 오분의 일을 더 추가하도록 명하는데 이 때문에 배상제사(the reparation offering)이라고 불리운다. 제사장 제도. 제사 제도와 더불어 레위기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이다. 제사장 제도에 대한 레위기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라는 주제를 총체적으로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이 점을 임명식에서 볼 수 있는데, 임명식에서 제사장들에게 의복을 입히는 의식과 그들에게 기름을 뿌리는 의식등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위해 구분된 장소인 성막과 동일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제사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진중에서 하나님의 거룩성을 보존하는 역할이다. 정결법. 제의적인 정결, 깨끗함에 대한 규례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정결함을 보존해야 했다. 정결법 속에서 정결함과 부정함을 철저하게 구분하고 있는데,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 이러한 정결법은 온전히 성취되었다. 정결함의 기준은 본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질서를 따르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거룩성은 개별적인 존재들이 스스로가 속한 계급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으로의 접근 레위기의 영구적인 가치는 무엇인가? 기독교는 이 책이 자신을 완전한 제사로 드린 완전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한다."

[최신 구약 개론] 룻기 

"룻기 룻기는 폭풍 속의 짧은 고요이다. 성경에서는 사사기 다음에 사무엘서 앞에 위치함으로 이 둘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구성은 매우 단순하고, 분명하고, 짧으면서도 매력적인 내러티브로 되어 있다. 역사적 배경 표제는 사사시대에 대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사사시대의 저작물이라고 확정지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먼저 이 책의 연대 문제를 고려해 보자. 첫째, 이 책이 아람어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는 주장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람어가 주전 2천년기의 이른 시기부터 통용되었음이 밝혀지면서 연대설정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둘째, 룻기에 나오는 일부 법률적인 관행들이 신명기의 경우와 상충된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차이가 나는 법률들에 대해서 허바드는 서로 다른 상황들에 기초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줌으로 신명기와 비교하는 것을 반대했다. 셋째, 표제가 신명기 신학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족보가 제사 문서의 문체와 관련이 있다는 점은 신명기의 신학을 포로시대와 연결시키고 제사 문서의 신학을 포로기 이후 시대로 보는 학자들로 하여금 룻기를 늦은 시대의 책으로 보게 만들었다. 넷째, 룻기가 히브리어 성경의 성문서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포로기 이후 시대를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경의 책들을 범주별로 묶은 데에는 연대 이외의 다른 이유들이 관련되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한편으로 많은 학자들이 에스라-느헤미야 시대의 것으로 간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그것은 룻기서가 에스라-느헤미야가 보인 가혹한 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룻기는 전혀 논쟁적인 어조를 띠지 않고 있으며, 에스라-느헤미야의 정책과 관련된 아무런 암시도 받을 수가 없다. 다시 이 책의 저작 목적을 살펴보자. 하나님께서 엘리멜렉의 가족을 섭리로서 구원하신다는 기본적인 주제가 룻기의 전체 목적중의 하나이며, 나아가서 룻기는 하나의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다윗의 생애에 계속적인 섭리를 베푸셨다는 점에 호소함으로써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이 폭넓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런 가능성을 볼 때 저작 시기는 다윗과 솔로몬의 때라고 보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하다. 사울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다윗과 솔로몬은 그 왕조의 정당성을 부여받아야 했고, 또한 이방인들이 다윗 권력의 중요한 토대 중의 하나였기에 여호와께 충성하는 이방인의 한 전형을 룻기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 또한 정황적인 증거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룻기가 포로기 이전에 쓰여졌다는 큰 틀을 인정하고, 교조적으로 어떤 한 정황을 절대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율법적인 전통들 다수의 율법적인 전통들이 등장하는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룻기가 율법 문헌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내러티브로서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이나 관습의 실제적인 적용은 무시되거나 온전한 면을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다. 율법 문헌은 하나의 원리를 제공해주고 있지만, 구체적인 상황 즉 룻기의 문맥속에서 유동성있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문학적인 분석 장르 영웅당, 노벨라, 짧은 이야기 등으로 장르를 표현하고 있다. 아마도 짧은 이야기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한데, 그 앞에 역사적이라는 형용사를 덧붙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구조 서장(1:1-5) 제 1 막 : 모압을 벗어남(1:6-18) 제 2 막 : 베들레헴(1:9-22) 제 3 막 : 보아스의 등장(2:1-23) 제 4 막 : 계호기(3:1-18) 제 5 막 : 공개적인 선언(4:1-12) 결장(4:13-22) 문체 단순하고 명료한 문체 때문에 항상 주목을 받아왔다. 이 책의 플롯은 그 균형미와 극적인 성격으로 해서 독자들을 매혹시켜 왔다. 로버는 가정과 안위에서 그 해답을 찾는 공허와 충족(emptiness and fullness)이라는 주제가 이 이야기의 심장이라고 주장했다. 신학적인 메시지 언뜻 보기에는 깊이 없는 결혼 이야기처럼 보이고 윤리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이 책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숨겨져 있으나 지속적인 섭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이 짧은 책에서 23번이나 사용되었다.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계속적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계속적인 사역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 이 책의 신학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곳이 2:3절인데, 우연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그 만남에 아무런 인간적 조작이 없었다는 것이다. 룻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나 초자연적인 사건이 없다. 그러나 출애굽의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이 또한 룻기 전체를 주도하고 계심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감추어진 계속적인 섭리는 엘리멜렉의 가족을 놀랍게 구원하신 것이며, 나아가서 구약역사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다윗의 출생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룻기에 있어서 진정한 충족은 다윗이며,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값진 선물인 셈이다. 신약으로의 접근 마태의 족보에는 룻이 다윗의 할머니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단지 몇 명의 여인들의 이름만이 나오고 있지만, 하나님은 이 부족한 여인들을 통해서 메시야에 이르는 계보를 계속하셨음을 거시적으로 보게 한다. 하나님은 룻기 속에서 나타나신 것처럼 자기 백성을 다스리고 구속하실 때 은밀하면서도 기적적인 섭리를 계속해서 행하시고 계신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 안에서도 하나님의 은밀한 감추어진 손길이 가득히 역사하고 계셨던 것이다. "

[최신 구약 개론] 말라기 

"말라기서는 십이 소선지서의 열두번째 책이며, 세부분으로 구성된 정경의 두 번째 부분의 마지막 책이다. 헬라어 역본의 전통을 따르는 영어 번역본들에서 말라기는 구약 정경의 마지막 책이 된다. 선지자 엘리야의 도래를 고대하면서 구약을 매듭짓고 있는 반면에, 신약시대의 최초의 목소리들 중의 하나가 예수가 엘리야와 연결시킨 세례 요한이라는 점은 우리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역사적 배경 저자 여호와께서 말라기로 이스라엘에게 하신 경고이다. 그는 선지자라고 불려지지 않았고 다른 칭호도 주어져 있지 않다. 어떤 사람은 말라기는 “나의 사자”라는 말이지 고유명사가 아니라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말라기서의 표제에 대한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은 말라기란 단어가 다른 곳에서 언급된 바도 없고 우리에게 알려진 바도 없는 어떤 선지자의 이름이라고 보는 것이다. 연대 및 역사적 배경 말라기가 페르시아 시대의 사람이라는데는 광범위한 동의가 있다. 성전은 이미 재건된 상태이며, 이미 그 성전에 대한 환멸이 들어서 있다. 또한 1:8절에서 사용된 총독이라는 단어는 페르시아 시대의 전문용어이기 때문에 증거는 확실하다. 그러나 우리가 페르시아 시대로 확증할수 있기는 하지만, 연대를 추정하는 것은 어렵다. 성전에 대한 환멸이 이미 생겨난 것으로 볼 때 성전이 완공될 후 몇 십 년이 흘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이 책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이 말라기가 그들보다 선대의 사람일 것이라는 가정을 항ㄹ 수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책이 주전 475~450년 사이에 기록되었다는 결론을 따른다. 고레스의 칙령 이후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이미 성전도 완성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번영을 허락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였다. 이 때문에 낙심과 함께 도덕적인 타락이 수반되었다. 카이저는 말라기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들이 느헤미야가 직면한 윤리적인 문제들과 밀접함을 지적하였다. 1. 잡혼 2. 십일조를 준수하지 않음 3. 안식일을 준수하는 일에 관심이 없음 4. 부패한 제사장들 5. 사회적인 문제들 문학적인 분석 장르 및 구조 표제는 예언이라는 것을 시사해주는 장르 표지들을 사용하고 있다. 말라기서 안에는 일련의 논쟁들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논쟁들 속에서 선지자를 통해 자신의 속성을 묫?시고 자기 백성의 잘못된 행위들을 꾸짖으시며, 자신이 어떻게 그들을 심판할 것인지를 묘사하신다. 표제에 이어 말라기는 여섯 번 이 백성과 논쟁한다. 첫 번째 논쟁은 여섯 논쟁의 통상적인 패턴을 제공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속성에 대한 진리를 자기 백성에게 주장하시고, 백성은 하나님께 되묻는다. 1.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에 대한 논쟁(1:2~5) 2.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보여준 모멸에 대한 논쟁(1:6~2:9) 3. 이스라엘이 언약을 어긴 것에 대한 논쟁(2:10~16) 4.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논쟁(2:17~3:5) 5. 회개에 대한 논쟁(3:6~12) 6. 하나님에 대한 완악한 말들에 대한 논쟁(3:13~4:3)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세 구절은 일종의 부록이다. 문체 가장 두드러진 양식은 논쟁이라는 양식이다. 말라기서가 과연 산문이나 운문이냐 하는 문제는 논쟁의 핵심이다. 신학적인 메시지 말라기가 이스라엘에게 준 메시지의 핵심에는 언약이 들어있다. 레위 지파와의 언약(2:8), 조상들과의 언약, 결혼 언약 등의 세 가지 언약이 분명히 언급되어 있다. 말라기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언약에 근거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은 이러한 언약 관계들을 위반하는 것에 기초한다고 선포한다. 말라기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이스라엘을 사랑한다는 증거들을 여전히 보이고 계시면서도 정작 이스라엘이 자기를 사랑하는지에 대해서는 의심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여섯 개의 논쟁은 그 각자가 하나님에 대해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점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말라기는 단지 이스라엘이 과거의 죄 때문에 현재 회개해야 한다는 점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또한 그들의 미래에 대해서 희망찬 이상을 제시해 준다. 신약으로의 접근 마가복음은 말라기3:1과 이사야40:3을 결합한 인용문으로 시작하는데, 말라기서의 소위 부록 부분은 이 사자가 엘리야라고 밝히고 있다. 메신저 역할을 하는 엘리야가 요한이라고 밝히신 분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넌지시 자신을 말라기서 본문에 언급되어 있는 강림하실 여호와와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말라기서의 종말론적인 희망들은 복음서들에서 성취된다."

[최신 구약 개론] 미가 

"미가서의 심판과 구원의 연설들의 배열은 그 구조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수사학적인 웅변성과 힘에 있어서는 이사야서에 비견될 만하다. 역사적 배경 저작권 및 저작 연대 1:1은 선지자의 이름을 고향과 연결지어 언급하고 있으며, 그의 사역의 연대도 제시한다. 미가의 일반적인 이름은 미가야로서 ""야훼와 같은 이가 누구인가?""라는 뜻이다. 모레셋은 예루살렘에서 서남쪽으로 약 40km 정도 떨어져 있다. 이 마을은 해안 평지 가까운 곳의 세펠라의 느린 경사면을 가진 구릉지의 변경에 위치해 있다. 미가는 구약의 다른 부분에서 단 한 번 언급되어 있다(렘26:17-19). 왕들의 이름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미가서의 연대는 다음과 같다. 요담(750-732), 아하스(732-716), 히스기야(715-686). 가능성으로치면 요담 말기부터 히스기야 초까지라고 할 수 있지만, 최대 750-686년까지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는 이사야의 활동 시기로서 아마도 같은 시기에 활동했거나, 미가가 조금 더 늦게 시작했을 것이다. 시대 사마리아가 살만에셀 5세의 손에 의해 멸망을 당한 때와 관련이 있다. 사르곤 2세의 시기에 이스라엘은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가 그 왕이 사망하고 산헤립이 등극하자 바벨론왕 므로닥 발라단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고, 그 때문에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해서 예루살렘까지 쳐들어 온다. 히스기야의 회개로 인하여 예루살렘이 남아 있었지만, 백성들의 죄악의 흐름을 막지는 못했으며, 그로인해 유다의 멸망과 포로 귀환 등이 미가 예언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연구사 비평가들은 미가서의 진정성 문제에 의문을 표기해 왔다. 그들은 미가 자신의 신탁은 처음 세장에 국한되어 있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예언의 가능성을 받아들인다면 미가서의 후반부가 미가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할 길이 없다. 아무튼 슈타데의 시대 이후 미가서는 그 최종 저작 연대를 포로기 이후 시대인 복합적인 문헌이라는 생각이 보편적인 시각이 되었다. 문학적인 분석 문학적인 구조에 있어서 광범위한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다만 몇 가지는 확실하다. 첫째, 미가의 신탁들은 한 시기에 다 전한 것이 아니다. 그의 사역 기간 전체에 걸친 선지자적 메시지의 모음집으로 이해해야 한다. 둘째, 미가서에 나타나는 연대기적 순서가 반드시 책의 구조를 파악하는 열쇠는 아니다. 셋째, 예언은 대략적으로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교차적으로 배열하고 있다. 개관 표제(1:1) 1. 심판과 구원에 대한 첫 번째 언쟁(1:2-5장) a. 배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사마리아 및 유다의 사회악(1:2-3:12) b.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소망의 말씀(4-5장) 2. 심판과 구원에 대한 두 번째 언쟁(6-7장) a.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쟁(6:1-8) b. 이스라엘의 사회악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6:9-16) c. 이스라엘의 상황에 대한 선지자의 탄식(7:1-7) d. 소망과 찬양의 시들(7:8-20) 문체 미가서의 히브리어 본문이 매우 난해하며, 동시대 작품인 이사야서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가리워져 있었지만, 미가서의 문체 특히 언어와 수사법에 있어서는 탁월한 위치를 점한다. 미1:10-16절이 그것을 잘 반영해주고 있는데, 대단한 언어유희가 포함되어 있다. 신학적인 메시지 미가서의 신학은 주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길을 떠나서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는데, 이것들은 주로 제의적인 것들과 사회적인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제사장들, 거짓 선지자들까지 총체적인 부정을 저지름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렸고,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소송을 제기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전히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의를 행하기를 원하시며, 돌아올 것을 요구하고 계신다. 죄에 대한 심판의 외침이 중심적인 것이긴 하지만, 소망에 대한 내용도 함께 중점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미가에 의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풍성하시며,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약속을 지키시는데 있어서 신실하시다. 다윗에게 주신 약속은 죽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장차 성취될 것이다(5:1-2) 신약으로의 접근 미가는 당대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했지만, 그 역사를 넘어서는 예언들을 하고 있으며, 이것은 독자들에게 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게 하였다. 신약의 저자들은 미가의 이런 관점을 잘 인식하였고, 미가서 5:2절을 인용하였다(마2:5). 다윗과 같은 통치자의 대망은 베들레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서 온전히 성취된 것이다."

[최신 구약 개론] 민수기 

"히브리어 이름은 ""광야에서""라는 의미인데 그것은 민수기의 지리적인 배경이 먼저는 시내광야에서 바란광야로 그리고 마지막엔 모압평지로 이동되기 때문이다. 민수기라는 제목은 민수기에 나오는 인구조사에 기인한 것인데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역시 첫 번째 단어가 그리고라는 접속사로 시작함으로 모세 오경과의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민수기의 중요한 역할은 애굽을 떠나 광야에서 죄를 지은 구세대로부터 약속의 땅의 바로 앞에 서 있는 신세대로의 전이를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작들과 소망에 대한 꿈을 제공해 준다. 역사적 배경 저작권 형성과정의 문제 민수기 내에서는 모세의 저술활동에 대한 언급이 단 한 번 밖에 안나온다(33:1-2). 모세는 주로 3인칭으로 언급되고 있지만, 이는 또한 고대 사회의 일반적인 문체일 뿐 저작권의 문제를 결정짓지는 못한다. 민수기에는 확실히 모세 이후에 첨가된 것으로 보이는 본문들도 있다. 민32:34-42 등은 열두지파의 정복이후의 건설활동에 대한 언급들인데 이것들은 모세이후의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한 민수기에는 모세가 자신의 책을 만드는데 있어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 기록 자료들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들면, 인구조사 기록들, 발람 이야기등도 어떤 다른 자료를 가지고 사용했음을 짐작케 하는 것이다. 결국 민수기가 본질적으로 모세의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문서 자료와 후대의 해설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셈이다. 해리슨은 민수기 1:16-18과 여호수아1:10에 근거해서 이스라엘에 연대기 기자들 혹은 서기관들이라는 계층이 존재했다는 점을 주장했는데, 확실한 것은 당시 광범위한 기록 보관 작업들 자체는 있었다는 사실이다. 문학적인 분석 장르 민수기의 장르는 매우 다양하다. 내러티브, 시, 예언, 승리의 노래, 기도, 축도, 풍자, 외교서신, 시민법, 제의법, 신탁에 의한 재판, 인구조사목록, 성전 문헌, 방랑기 등이 그 내용이다. 이런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오경전체가 교훈적인 역사라는 넓은 맥락 가운데서 보는 것이 유익하다. 위의 모든 장르들은 이 문헌의 개별적인 에피소드들을 말하고 있으면서도 내러티브와 율법이라는 넓은 맥락으로 종합할 수 있다. 구조 이 책의 구조는 장르의 다양성 만큼이나 다양하게 제시되었는데,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연대기에 기초한 것과 지리적인 구조에 따른 것이다. 연대기에 기초한 구조 지리적 구조 1:1-10:11 광야생활 제 2월1일-19일 21:10-36:13 광야 40년 기간중 다섯달 10:12-21:9 광야40년의 어느날 1:1-10:10 시내광야 10:11-20:13 가데스 주변지역 20:14-36:13 가데스에서 모압으로 올슨은 민수기의 고대성과 오경안에서의 독특성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그는 민수기에 나오는 두 인구조사 목록의 중요성을 연구하였다. 이 두 목록이 민수기의 구조를 이루는 근간이 되는 것으로 광야에서의 두 세대를 구분짓는 선이라고 결론짓는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한 세대를 마치고, 이제 광야에서부터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민수기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1. 옛 세대의 종말 (1:1-25:8) 이스라엘의 행군 준비 및 시작 (1:1-10:36) 이스라엘의 반역 및 죽음, 구원의 순환 (11:1-25:18) 2. 새 세대의 탄생(26:1-36:13)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준비와 조직(26:1-36:13) 경고 문체 민수기의 문체는 특별히 심미학적인 분석의 대상은 아니었다. 이것은 민수기가 다른 성경 본문에 비해서 문학적인 탁월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민수기도 역시 눈에 띄는 문학적인 기교들을 사용하고 있다. 밀그롬은 민수기가 사용하는 가장 흔한 기법이 교차대구법과 역순대구법이라고 지적했으며, 또한 칠중반복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밝혔다. 칠중반복구조는 한 단어나 문구를 일곱 번 반복하는 것인데 32장에서 다섯 개의 단어가 각각 7번씩 반복되고 있음을 보였다. 신학적인 메시지 민수기는 두 세대의 전환을 보여줌으로 구속사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첫 번째 부분은 죄와 심판의 이야기이다. 그 결과로 이 첫 세대는 광야에서 죽고 약속의 땅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광야에서 계속해서 역사하였으며, 여전히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으로 대우하셨다. 두 번째 부분은 근본적으로 긍정적이며, 희망적이다. 옛 세대의 사람은 단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 첫 세대가 모두 죽은 이후에 두 번째 세대의 어떤 사람도 죽었다는 기록이 없으며, 그들의 군사적인 행동은 성공적이었으며, 옛 세대의 잠재적인 위험은 해소되었다. 그리고 미래 생활을 위한 율법이 선포된다. 결국 여전히 위협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약속과 희망이 두 번째 부분의 지배적인 분위기이다. 그러나 두 번째 세대의 희망도 역시 시도되지 않은 희망으로 미래에 대해서 열려있다. 민수기의 지속적인 중요성은 민수기가 하나님의 백성의 모든 세대들에게 하나의 패러다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수기는 모든 세대가 새 세대의 자리에 설 것을 요청하고 있다. 신약으로의 접근 하나님은 여전히 개입하신다. 민수기의 주인공은 야훼이시다. 극도로 분노하신 가운데서도 그는 이스라엘과의 약속을 지키시며, 광야의 모든 여정에서 그들을 인도하시며, 그들의 필요를 채우신다. 하나님은 그들에 대한 언약적인 사랑 때문에 자기 백성들의 일 속에 계속 개입하신다. 물론 신약은 이러한 주제를 이어간다. 사실상 신약 성경은 이러한 하니님의 개입의 절정을 소개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절정이다. 광야란 주제 광야는 오경의 중요한 배경의 역할을 한다. 하나님의 거룩성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하나님의 거룩성이라는 주제를 함께 가지고 있다. 이런 면에서 민수기는 레위인들의 지위와 성막 기구들을 나르는 그들의 책임 등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주어진 많은 율법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가 진의 순결성을 위한 것으로 간주된다."

[최신 구약 개론] 사무엘서 

"주로 세 명의 인물 즉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 첫 번째 왕 사울, 그리고 다윗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하나의 전환점 즉 신정정치에서 왕정정치로의 전환에 대한 책이다. 역사적 배경 저작권 익명의 저자에 의한 것이다. 사무엘 상하가 원래 하나의 책이었으나, 그 방대함으로 인해 둘로 나뉘어 진 것같다. 그러나 책의 형성 과정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아주 이른 시기에 현재 형태의 본문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형태의 본문이 만들어 졌을 가능성이있다. 형성과정의 역사 문서비평적 접근방법. 본문 안에 있는 긴장들, 중복기사들로 인해서 학자들은 두 개의 자료층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벨하우젠은 왕정체제를 선호하는 시각과 왕정체제에 반대적인 시각을 찾아내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이미 인기를 잃었다. 전승사비평적인 접근방법. 이들은 몇 개의 이야기들을 구분해 내고, 개별적인 문헌들의 모음집이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편집비평적 접근방법. 노트는 신명기적 역사가 통일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는데, 이 점은 기존의 문서비평학적 접근 방법들과는 날카로운 대조를 이룬다. 이 신명기 기자는 포로 생활의 이유를 설명하고자 했으며, 미래에 대한 소망을 제시하지 않았다. 노트의 가장 중요한 약점은 신명기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중요성을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다윗 언양의 영원성은 노트의 부정적인 해석과는 대조적으로 낙관적인 느낌을 던져주고 있다. 그러나 편집비평적인 설명들에 따르면 최종적인 판본은 신학적인 일관성과 자료 취급 능력이 결여된 이념적으로 혼란된 문서로 남게 된다. 문학적인 구조 위의 방법론들의 실패로 말미암아 최근의 학자들은 조화불가능한 본문에 치중하거나, 그 이전 단계의 문헌들을 찾아내는 작업에서 떠나서 현재 있는 본문 그 자체의 문학적이고 심미적인 측면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나의 송가는 사무엘서 전체를 채우는 주제들을 미리 요약하고 있다. 한나의 이 예언적인 노래는 이스라엘의 왕권의 등장을 고대하고 있으며, 다윗이 역사적인 실존인물로서 축하하게될 승리를 바라보고 있다. 사본비평학적인 문제들 학자들은 사무엘서의 맛소라 사본이 가장 전승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70인경의 번역자들과 맛소라 사본 전통에는 분명히 다른 형태의 히브리어 본문이 존재했다는 결론을 내리게끔 한다. 전반적으로 볼 때 사무엘서에 대한 쿰란 문헌들의 발견은 70인경 번역자들과 역대기 기자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무엘서 본문에 대한 관심ㅇ르 고조시켰다. 신학적인 메시지 사무엘서는 보통 신명기적 역사의 한 부분으로 간주된다. 여기에는 세 가지 중요한 신학적인 관심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왕을 갖게 될 것을 예견하고(17:14-20), 왕의 통치원칙들에 대해서 제시하고 있다. 2. 신명기서는 또한 이스라엘이 주변의 적들로부터 안식을 얻을 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12:12). 3. 신명기는 또한 자기 백성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그리고 있다. 사무엘서 전체에 걸쳐서 독자들은 하나님의 축복과 심판이 역사하고 있는 것을 본다. 하나님은 역사속의 사건들을 주관하시며, 개인과 국가의 경로를 선택하시고 예정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선택한 백성과 왕들을 향한 자신의 은혜로운 뜻을 위해서 역사하신다. 사무엘서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율법 사이의 긴장이 계속되는데 이런 긴장이 왕정체제의 문제에 적용되어짐으로 해서 더욱 확장된다. 신약으로의 접근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마음을 보시고 그를 선택하셨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언약 속에서 사는 삶이 요구하는 핵심적인 내용이 모세와 에수님의 입을 통해서 말했듯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보여준다(신6:5;막12:30) 그러나 다윗도 여전히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는 목자로서 사자를 죽이는 자였으나, 나중에는 자기의 권력으로 자기 양들을 죽게 했다. 그러므로 다윗도 역시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좋은 목자가 아니었다. 우리는 다른 좋은 목자를 찾기 이해서는 성경을 더 읽어 나가야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된다(요10:11). 또한 사무엘서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자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히브리어로 메시야란 말인데, 이 개념은 정의로운 왕, 즉 다윗같은 왕에 대한 이스라엘의 이념으로 파생되었다. 그리고 메시야개념은 여기서부터 발전해서 미래에 도래할 다윗의 후손을 고대하게 되었다. 한나의 노래속에 들어 있는 한 아기에 대한 기대와 의로운 왕 및 기름부음을 받은 자에 대한 기대는 마리아가 이스라엘의 왕이자 메시야이신 분의 탄생을 고대하며 부른 마리아 자신의 송가에서 다시 들려진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큰 이름을 주시겠다고 한 약속의 후사가 되었다. 다윗의 큰 아들은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받는다. 그리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큰 적과 홀로 전투를 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역시 우리 영혼의 적들에게 홀로 승리를 거두실 것이다. "

[최신 구약 개론] 사사기 

"사사기 사사기는 여호수아의 죽음과 왕정체제의 시작 사이의 기간을 추적한다. 이 책의 독자들은 흠이 많은 사사들을 통해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길이 참으시고 자비로우심을 배우게 된다. 역사적 배경 사사기 시대에 해당하는 주전 이천년기의 후반부에는 근동지방 전역에 걸쳐서 거대한 민족 이동들이 이루어지던 시대였다. 물론 이 책의 저자도 익명으로남아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이스라엘의 왕정체제가 시작된 이후의 어느 시기에 살았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 책의 저작시기에 대한 단서를 18:30-31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모세의 아들 요나단의 후손인 제사장들이 계속해서 일을 했으며, 법궤가 실로에 있는 기간 동안 미가의 우상들이 계속되어졌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물론 이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에 대한 견해들이 많이 있다. 6세기의 늦은 연대를 주장하거나, 혹은 단 주변 지역이 빼앗긴 날 즉 이 부분이 이스라엘로 존재하지 않게 된 때를 가리킨다고 주장된다. 아니면 삼상4:1-11이하의 내용과 관련해서 상당히 이른 시기를 주장하기도 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들 역시 연대와 관련된 정치적 성향을 보여준다. 아마도 이 책의 연대는 왕국 분열 이후가 될 것이다. 마지막 장들의 역사 기록은 친 다윗적이자 반사울적인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성향으로 볼 때 이 이야기는 왕정시대의 상당히 이른 시기를 반영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므로 이 책의 내적인 증거는 왕국의 분열 직후의 시기를 시사해 주고 있다. 연대적인 문제는 출애굽 연대와 관련해서 깊은 논란거리 중의 하나이다. 사사들의 산술적인 연대는 410년이며, 또한 본문은 이스라엘이 우상숭배한 기간에 대한 언급은 없기 때문에 출애굽 연대를 어떻게 이해하든지 조화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므로 몇몇 사사들이 이스라엘의 각기 다른지역에서 중복된 시기에 활동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재구성을 위한 충분한 자료는 부족하다. 문학적인 구조 서론 서론은 지파들이 협력하여 정복활동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그 결론은 지파들이 연합하여 한 지파에 맞서 싸우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서론에서는 이 책 전체의 주제, 즉 왜 가나안 사람들이 그 땅에서 완전히 쫓겨나지 않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심본문 나름대로의 사이클을 가지고 있는데, 죄-압제-구원의 구조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순환론적인 흐름은 아니다. 보다 나은 용어는 ""나선형 하강(downward spiral)""이다. 저자는 에훗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하나님께서 옷니엘을 세우시듯이 에훗을 세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에훗은 하나님의 신에 의해서 감동을 받지도 않았으며, 이스라엘을 치리하지도 않았다. 에훗은 속임수와 배반에 의해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 본문은 야웨의 뜻 및 그와 야훼의 관계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드보라는 여 선지자로서 이스라엘을 치리하였다. 그러나 드보라가 사사로 활동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남자들의 지도력에 의문을 던진다. 드보라의 노래 말 속에는 분파주의와 지파간의 분열을 예상케 하며, 결국 이것은 이 책의 마지막 이야기에서 그 절정을 보여준다. 사사들의 지도력을 가지고는 이스라엘 영토가 안전하게 보존될 수 없다는 것이 메시지이다. 사사들도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연약하고 범죄하는 사람들이다. 여호수아가 유산으로 남긴 통일된 이스라엘은 분파적이고, 지역주의적인 갈등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종교적, 정치적 혼란 때문에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땅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지도력이 필요함을 내다 보게 한다. 신학적인 메시지 1. 은혜와 율법, 조건성과 무조건성 사사기서가 제공해주고 있는 것은 조직 신학이 아니라 관계의 역사이다. 사사기서는 우리에게 하나의 역석,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고 있는 관계는 조건적이자 무조건적이라는 역설을 남겨 놓는다. 그리고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이 양자 사이의 긴장이다. 2.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 사사기서는 비중앙집권적인 통치가 비록 국가의 지도권이나 전쟁 문제에 하나님께서 간헐적으로 개입하시는 식의 축복을 누린다 할지라도 결국 거룩한 나라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사기서는 왕정 체제로서의 변천에 대해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신약으로의 접근 사사기는 일반 인간 군상을 잘 묘사한다. 사사들은 농부, 여자, 왼손잡이, 쓸모없는 떠돌이, 성에 집착하는 나실인 등이었다. 중심 인물들의 약점과 실패들을 통해서 우리가 지나치게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경계하신다(고전6:11). 우리는 그들의 모든 흠집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진 신앙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한 것은 바로 귿르의 믿음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저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인내하고 예수를 바라볼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는 증인들의 허다한 구름중의 일부이다(히1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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